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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 첫번째 무비. <퍼펙트 데이즈>

열두시공삼분 2025. 3. 4. 22:41

장르 : 드라마

출연 : 야쿠쇼 쇼지

소개글 :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간단한 후기

이 세상엔 수많은 세상이 있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세상이 있지.

 

 

영화속에서 히라야마가 조카인 니코에게 해주는 말이다. 니코는 엄마와의 싸움으로 인해 가출해 히라야마의 집에 찾아오는데, 긴 시간 동안 왕래가 없던 삼촌인 히라야마는 성장해 버린 니코를 보고 놀라게 된다. 계속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니코는 히라야마에겐 반가운 손님이었을까?

히라야마의 일상을 같이 보내고 싶은 니코는 히라야마의 일을 같이 따라가게 되면서 히라야마의 일하는 모습을 두눈에 담는다. 공중 화장실 청소를 하는 모습을 히라야마는 니코에게 거리낌 없이 보여주면서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니코는 히라야마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주말에 니코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니코는 엄마와 히라야마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다면서 얘기를 꺼낸다. 히라야마의 가족얘기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지만, 히라야마는 "이 세상엔 수많은 세상이 있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세상이 있지"의 말을 통해서 가족들과 사이가 좋고 안 좋고 가 아닌 서로 다르다는 것을 얘기해 주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음악도 카세트테이프와 독서도 헌책방 같은 곳에서 구입해서 보는 책들, 히라야마의 나이는 알 수 없지만 50대 이상은 되어 보인 모습에서 본인만의 세상이 확실하게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김창옥쇼를 숏츠로 본 적이 있다. 그때 김창옥님이 얘기하신 부분이 생각났다. 가족들 사이라도 모두 각자만의 우주를 만든다. 서로를 잘 안다 생각하면서도 침범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있고 나만 알고 싶어 하는 개인적인 부분이 있다는 뜻인 거 같다.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아침에 식물에 물을 주며, 점심시간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나무를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퇴근 후 단골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술 한잔을 마시고, 자기 전 독서를 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히라야마의 집 안의 모습들은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꽉 채워진 모습들이다. 지난 시간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렵게나마 보여질 수 있는 모습들이다. 책과 카세트, 식물과 사진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불필요한 물건들은 하나도 없는 장면들에서 히라야마의 성격도 깔끔하면서 계획적인 면을 생각게 하는 인물이라 추측해 본다. 

 

히라야마 방 <퍼펙트 데이즈>

 

 

정리된 사진들 <퍼펙트 데이즈>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는 매일 새벽 거리를 청소하는 빗자루 소리에 일어나 하루가 시작된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하루하루가 결코 똑같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매일 같은 길을 가고, 같은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고, 목욕탕을 가고, 저녁을 먹으러 가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히라야마를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무도 히라야마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히라야마도 당연한 듯이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단골 가게의 사장들과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면서도 대화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자신만의 힐링 시간을 갖는 듯.. 당연스럽게 혼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간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히라야마의 표정과 목소리의 변화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웃는 모습들은 아이들과 니코를 만났을 때, 그리고 여성의 관심을 받을 때에만 볼 수 있다. 이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좋아하는 인간적인 면과 남성으로서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 평범한 감정을 지닌 사람임을 보여준다. 혼자 생활한다고 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거나 싫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가끔 말을 걸거나 도움을 주는 등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이런 모습들은 히라야마가 세상에 불만을 갖지도 지금의 '나' 자신의 모습에 불만을 갖지도 않아 보인다. 

 

그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출근하는 히라야마의 얼굴을 한동안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히라야마는 웃는 듯하면서도 우는 듯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는 거 같다는 느낌이다.

매일이 힘든 날일수도 행복한 날일 수도 없다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우리는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면 된다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고.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을 남기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명장면이다. 야쿠쇼 코지 배우의 얼굴과 섬세한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같은 분위기로 마무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처음에는 일본 영화이기에 일본 감독의 작품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독일 감독인 빔 벤더스가 연출했다. 연출과 히라야마 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런 작품이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들 자신만의 퍼펙트 데이즈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퍼펙트 데이즈>